우리는 삶을 살아가고, 경험하고, 느끼며꿈꾼다. 때로는 경험의 크기가, 느낌의 깊이가 너무 크고깊어 말을 할 수도, 기록할 수도 없다. 꾹 참고 이것을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그가 살았던 세계를 너무 사랑했거나, 아니면 감정이라곤 하나도 없는 자동기술기계일거다.
문화평론가인 오오츠카 에이지는 물론 전자의 사람이다. 그의 “그녀들의 연합적군”이 그랬듯 그는 자신이 살아온 시대와 세계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조심스럽게 기록하여 이해하려는 사람이다. “오타쿠의 정신사”는 1980년대라는 하나의 시대를 기록하고, 여기서 ‘오타쿠’라는하나의 세대, 혹은 집단이 등장하게 되는 역사적 맥락을 밝히려는 시도다. 학문을 대중의 공간으로 끌고 온 ‘뉴 아카’와 새로운 문화적 소비 세대인 ‘신인류’를 거쳐 어떻게 미야자와 츠토무와 오움교가 등장했는지를, 그리고 그것이신세기 에반겔리온과 미야타이 신지를 통해 어떻게 결과되고 귀결되었는가를 이야기한다.
여기서 그는 그가 만났던 것, 잃었던 것, 그리고 사랑했지만 떠나보내야 했던 것을 반쯤은 자기 고백을 통해, 반쯤은민속학 전공자다운 논조를 통해 짚어 나간다. 자아를 형성하기 위한 사회화의 기제가 무너지고,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자기 폐쇄적 논리를 찾아가는 과정, 그래서얻어지는 차이화의 기제들, 이것이 다시 여성과 남성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회수되는 과정을 그는 때로는자기 자신이 참여한 여러 문화적 흐름 속에서 혹은 사회에 충격을 안겨주었던 범죄 혹은 사회적 사건들 속에서 담담하게 찾아낸다.
이 정도의 애정과 정성으로 자신이 살아나간 공간과 시간을 말하는 사람을 발견하는 일은 행복하다. 그것이 내가 살던 시대와 공간이 아니라 해도, 혹은 전혀 모르는시대라고 해도 말이다. 문화 연구의 겉멋과 텍스트에 대한 애정 없음에 항상 짜증을 내는 나에겐 오오츠카에이지의 책은 그래서 항상 즐거움이다. “오타쿠의 정신사”는이런 즐거움을 어린 시절 받고 행복했던 명절 과자 종합 세트만큼 풍요롭게 제공해 주는 책이다.
애정을 가진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비록그것이 훌륭하지 못할 지라도 그럴진 데, 만일 완성도까지 높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요네자와 요시히로의 이 ‘전후 소녀만화사’를 읽고 난 가장 큰 느낌이 바로 이것이다.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에전력으로 달려들어 그것을 완성해 나려는 치열한 노력.
이 책은 비평서라기 보다는 일종의 소녀망가에 대한 통사다. 단순히소녀망가의 역사를 연대기로 정리한 것이 아니라, 모티브와 기법, 그리고그것을 둘러싼 사회 환경의 관계를 통해서 어떻게 소녀망가가 진화했는가를 차분하게 밝힌다. 어떻게 아동만화, 아동 동화에서 소녀 만화가 분리되어 나오고, 그 과정에서소녀들의 꿈은 어떻게 형상화되는가를 다룬다. 행복이라는 추상적 가치를 전전, 전후 직후의 궁핍한 환경에서 세상의 고난을 헤쳐나가는 생활감 넘치는 (그래서어떻게 보면 칙칙하기까지 한) 만화에서 시작해서, 이것에대한 반발로서 막연히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에 집중하는 또 다른 모습. 여기서 각기 어떻게 표현과 기법들이진화하는가, 어떻게 삽화, 일러스트의 전통과 데츠카류의 스토리만화가 소녀 만가에서 접점을 찾아가는가를 꼼꼼하게 그린다.
특히나 이 책이 매력적인 건, 이 변화의 과정을 순수한 만가의 내적논리뿐만 아니라, 대본소 체제와 연재 체제의 대립, 그리고사회 문화적인 변화에 의한 반영으로 살펴봄으로써 그 변화를 맥락화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꽃의 24년조의 충격에 대해선 익히 알아왔지만, 그것이 결코 무에서 출발한것이 아님을 이 책은 이런 맥락화에서 착실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54세로 일찍 세상을 떠난 요시자와를 다시 기억하면서, 80년에 출간되었던 이 책을 다시 내놓게 된 것인데, 책 뒤에는그래서 당시 이 책이 쓰여질 때 상황을 그린 ‘아베장에서의 나날들’은마음이 찡하다. 허름한 목조 아파트에 모인 뜨거운 애정을 가진 젊은이들의 열띤 연구와 토론. 그 소박함과 성실함 등이 말이다.
- How video games are transforming thefuture of business
David Edery & Ethan Mollick
2009
Pearson Education; New Jersey
게임을 단순히 게임 안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 그것도 특히 경영이라는관점에서 보려는 시도는 Beck과 Wade의 공동 작업으로몇 편 있었다. HBS에서 나온 이 책들의 중심적 관점은 게이머라는 새로운 세대가 이후의 경영 환경을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CEO들, 기업은 이런 새로운 새대에 맞춰 경영 전략, 그리고 기업의 형태를바꾸어나갈 필요가 있다는 책이었던 거다.
개인적으로 이런 책을 참 안 좋아하지만, 그래도 새로 나온 게임 연구서는다 찾아봐야 한다는 강박에 보게 된 이 책은, MIT 슬로언 비즈니스 스쿨 출신의 현역 게임 산업 컨설턴트들이정리한 게임과 비즈니스의 관계에 대한 책이다. 우선 앞에 벡이랑 웨이드 책 보다는 훨씬 재미있다. 아무래도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니까 사례가 더 풍부하다. 그리고 앞의책들이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게임이 중요한 관심 거리다라는 걸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면, 이책은 게임을 실재로 비즈니스 환경에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다룬다. 게다가 그런 활용에서 반드시명심해야 할 키 포인트를 잘 정리하고 있다.
크게 세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서, 게임이 어떻게 새로운 광고 미디어가될 것인가, 게임이 어떻게 직원 트레이닝에 활용될 수 있을지, 마지막으로게임이 비즈니스의 미래 전략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를 살펴본다. 광고에서는 익히 아는 것처럼, PPL에서 Advergame, 가상 세계의 예들을 차례로 살펴보고있다. 특히 광고 컨설팅의 풍부한 경험을 통해서 지적하는 중심 포인트들은 꽤나 설득력이 있다.
국내에서도 게임과 비즈니스라는 문제로 몇 권 책이 준비되는 걸 알고, 또우연한 기회에 그 기획서들을 본 바 있지만, 역시 이런 책은 풍부한 경험과 그 경험이 주는 교훈이 담겨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단순한 교과서나 피가 되고 살이 되는가가 나뉘는 것 같다. 이 쪽에 관심을 가지거나파야 될 사람은 벡과 웨이드의 책보다는 이 친구들의 책을 보는 것이 나을 듯.
성에 대한 무한한 집착이 어떻게 기술을 발전시키고, 산업을 성장시켰는가에대한 이야기는 새삼스러울 건 없다. 그리고 게임에 영역에도 그리하리라는 거에 대해선 아무도 의심하지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본다면, 게임에서 성적 욕망을 투영한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일본의 PC 게임을 제외한다면말이다. 놀라울 정도로 성공을 거두고, 패러다임을 바꾼 게임들은어쨌든 성과는 무관한 게임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움직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Porn & Pong”은 이런 관점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게임 산업이 어떻게 성적 표현과 성적 내용을 담아가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영향을 받았으며 어떤 영향을미쳤는가를 살펴보는 책이다. 가장 특징적인 구성이라면 게임의 시기를 크게, 포르노의 시대/라라의 시대/GTA의시대로 나눈 것이며, 이 때 이 각 시대가 밖의 세계와 어떤 상관 관계를 가지는지를 연결한 것이라 하겠다. 가령 포르노의 시대에서는 초기 홈 포르노 산업의 형성과 게임에서의 포르노 수용, 라라의 시대에서는 인터넷을 통한 다양한 이미지들의 보급, 그리고심즈와 리얼리티 쇼, GTA 시대는 힙 합 문화, 라티노문화의 등장 등. 이런 연관이 엄밀하게 이어지지는 않지만 꽤 흥미진진하게 잘 정리하고 있다.
학문적이라기 보다는 재미있는 관점에서의 통찰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책이다. 그래도일본 야게임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지식이 있었지만, 잘 몰랐던 미국 초기 포르노 게임사에 대한 정보가담겨 있어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아즈마 히로키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과 관련하여 인터넷을 중심으로 벌어진 서평과 토론을 심포지움 형태로 만들고, 그것을다시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여기에는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논의와 이론적으로 차별점을 보이고 있는 “전투미소녀의 정신분석”의 사이토 타마키가 참여하고,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SF와 만화 등을 살펴보는 코타니 마리, 만화 평론가인 이토우 코우여기에 나카야마 카오루나 타케쿠마 켄타로우 등의 만화 작가, 편집자 등이 참여하여 ‘오타쿠의 규정’을 둘러싼 논쟁을 벌이게 된다.
포인트는 문화적 소비의 양태로부터 오타쿠의 성격 규정에 다가가는 아즈마 히로키에 반해, 오타쿠를 그들의 섹슈얼리티의 형성으로부터 규정하는 사이토 타마키의 간극이 과연 실제 오타쿠의 세대와 함께 했던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비춰지고 받아들여지는가를 다양하게 검토하고 있다. 책은 이런 면에서 일본 오타쿠연구의 다양한 시각과 그것의 다양한 변주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데, (가령 오타쿠는 여성의섹슈얼리티를 지닌다는 코타니 마리의 과격하면서도 흥미진진한 발언 같은) 책 전체적으로는 논쟁이 포인트를찾지 못하고 겉도는 면이 많아서 아쉽다.
그러나 이런 겉돈다는 사실 자체가 꽤나 흥미진진할 수 있는 것인데,왜냐하면 아즈마 히로키의 책이 지니는 한계가 바로 그것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동물화하는포스트모던”은 꽤나 잘 써진 문화 비평서다. 그러나 이 책은그 발상의 참신함과 거기서 비롯되는 개연성의 체계가 돋보이기 때문에 매력적이지만, 엄격한 문화 비평의잣대에서 평가될 때 그 유효성을 쉽게 인정받기는 힘들다. 그것은 사회적 변화의 양상과 오타쿠 문화 소비변화의 양상이라는 두 축이 실은 아즈마 히로키가 생각하는 것만큼 간단하게 선으로 연결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연표 위에 두 가지 변화 양상을 늘어놓고, 여기에 ‘세상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라고 선언하게 된다면 논의는 끝난다. 하지만실제로 이 두 가지 변화 양상이 하나의 내적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입증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최근 아는 친구가 이런 아즈마 히로키의 발상에 착안하여, 한국사회의 변동과 만화 스타일의 변동을 연동시켜 설명해보고자 했다. 모델이나 개연성만으로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것을 논문의 형태로 묶어내려 시도하자 갑자기 이 매력적인 모습은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사실 매력적인 문화비평서와 그것의 학술적 검토가 어긋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기 드보르의 매력적인 책 “스펙타클의 사회”를 입증하려 든다면, 거기에 무엇이 남을까? 아즈마 히로키의 작업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문화 비평의영역(문화 연구, 즉 영미권의 컬쳐 스터디가 아니라 벤야민이나짐멜의 전통에서의 영역)에서 이뤄진 것인 한, 이번 망상언론에서논의된 방식의 토론은 결과가 나오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아즈마 히로키와 코타니마리, 그리고 사이토 타마키 간의 좌담회 중에 나왔던 ‘일본문화 소비에서의 미국 콤플렉스’에 대한 이야기에서 극명하게 느껴질 것이다. ‘있다’는 사람과 ‘없었다’는 사람 사이에서 어떻게 논의가 조정될 수 있겠는가?
또하나 묘하게 느껴진 건 왜 아즈마 히로키가 사이토 타마키의 오타쿠에 대한 섹슈얼리티 규정을 일종의 본질론으로 보는가 하는 점이다. 사이토 타마키가 자신의 이론을 라깡적 기반 위에 두는 이상 사실 오타쿠의 섹슈얼리티는 구조적 규정성이고, 그런 의미에서 구성적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또한 당연히 사회적변동에 의해 변형되고 왜곡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타쿠의 섹슈얼리티는 저러니까 저런 행동을 하지라고단순하게 설명하는 도식은 아니지 않을까 싶은데, 아즈마 히로키의 학문적 이력을 볼 때 이런 점을 몰랐을리가없다는 걸 생각하면 무언가 더 뒤에 맥락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 글 내에서는 발견되기 힘들다.
오히려이번 책에서 가장 흥미 있었던 것은 오타쿠의 자기 경험에 대한 진술들, 그리고 만화 평론가 이토우 코우의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회가 닿는 대로 이토우 코우의 만화 평론서들을 읽어 볼 필요가 있지않을까 싶다.